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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전시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5층에서부터 1층으로 차례로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는 포니의 타임라인에 있는 다양한 흔적들을 만나 보고, 나아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포니의 헤리티지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살펴보고 미래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0 PONY, the timeless

    1974년 포니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타난 포니가 바꿔 놓은 풍경은 다채로웠다. 한 집 건너 ‘마이카’가 생겨나던 시절의 국민차 포니는 가족의 일상에 오롯이 등장한 새로운 구성원이었다. 여가의 범위는 점차 넓어졌고, 그와 더불어 새로운 자동차 문화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전국 곳곳을 달릴 국산차 개발이 그 시작이었지만, 포니가 보여준 종횡무진의 서사는 훨씬 눈부셨다. 자동차를 자세히 뜯어보면 우리가 사는 방식을 볼 수 있다. 과감하게 확장되는 포니의 서사를 들여다보면 그전과는 달라진 것이 많았다.

    포니의 타임라인에는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의 흔적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그 시기 우리 사회와 문화 전반에는 경제적 풍요와 다양성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그 흔적들과 마주하는 경험은 무엇을 안겨줄까. 헤리티지가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살펴봄으로써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같은 것이라면 ‘포니는 그 맨 앞에 불려 나올 만한 사례일 것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딛고 출발해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휴머니티를 통과해온 포니의 시간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그 궤적을 동력 삼아 펼쳐질 미래까지, 포니의 시간은 현재진행형이다.


    포니의 시간(PONY, the timeless)
    2023. 06. 09 ~ 2023. 10. 08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09:00 ~ 21:00 (매월 첫째 주 월요일 휴관)

  • 1 7080 age

    1970년대 산업화와 근대화라는 두 축이 본격적으로 몸을 뒤틀던 시기였다. ‘라인강의 기적’을 국산화한 ‘한강의 기적’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평균을 넘어서며 중진국 대열에 올랐고 국토와 도로, 도시 공간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불어닥쳤다. ‘국산화’에 대한 모멘텀이 생겨난 것도 이때였다. 자동차, 전자제품을 비롯해 대중음악과 만화에 이르기까지 모방과 번안의 과정을 통해 국산화를 꾀했다. 놀라운 속도로 보급된 TV와 아파트의 탄생은 이 시기를 관통하는 문화적 상징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트로트가 누리던 영광을 ‘청년문화’를 표방하는 포크 가수들이 나눠 가졌고, 신중현에 의해 록 음악이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또한 영화 <바보들의 행진>, <바람 불어 좋은 날>, <고래사냥>이 그 바통을 이어받으며 청년의 방황과 낭만을 감각적으로 스크린에 옮겼다. 1976년 창간한 잡지 <뿌리 깊은 나무>는 순우리말 제목과 가로쓰기를 처음 도입해 구독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경제와 수출은 성장세를 달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는 대중의 발이 되어 거리를 누볐다. 조용필의 ‘단발머리’와 현대의 ‘포니’가 어우러지던 시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유행어는 ‘마이카’와 ‘오너 드라이버’였다.

  • 2 PONY archive

    우리나라에서 직접 만든 고유의 자동차, 즉 ‘독자 모델’ 개발에는 원대한 밑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비용 문제와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의문부호가 공기처럼 떠돌았고, 많은 이들이 무모한 도전이라고 여겼다. 그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방법을 찾아 나섰다. 디자인은 이탈리아, 엔진과 변속기, 금형 기술은 일본 회사들과 손잡았다. 생산에 대한 자문은 영국 전문가를 섭외했다.

    독자 모델 개발을 결심한 지 1년 만인 1974년 6월, 첫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10월에는 ‘포니’와 ‘포니 쿠페’가 나란히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올랐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홉 번째,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자국 브랜드의 고유 모델 자동차를 가진 나라가 됐다. 에콰도르를 시작으로 국산 차의 해외 수출 시대를 열었고, 기존 해치백 모델에 이어 왜건, 픽업, 3도어 등 다양한 라인업이 출시됐다. 한국 자동차 시장의 방향타를 소형차 중심으로 바꾼 마이카 시대의 선봉, ‘포니 아카이브’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 3 Design heritage

    런던 디자인 뮤지엄 관장 데얀 수직(Deyan Sudjic)은 ‘자동차는 모던디자인과 산업문화의 정점’이라고 썼다. 현대적 느낌의 질감과 모양이란 측면에서 볼 때 자동차를 이기는 소비재를 떠올리긴 쉽지 않다. 그것은 기능과 쓰임에만 충실하던 자동차에 디자인이라는 생생한 언어를 입힌 결과였다. 유럽의 자동차 디자인,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카로체리아(Carrozzeria, 자동차 디자인 전문 업체) 들은 독특한 제작 방식과 예술적 디자인을 버무려 화려한 커리어와 걸작을 남겼다.

    자동차 전문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로 뽑힌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폭스바겐 골프로 부표를 세운 뒤 로터스 에스프리, BMW M1, 들로리안 DMC-12 등을 그려내며 곡선과 곡면에 몰두하던 디자인 흐름을 직선과 평면으로 돌려세웠다. 같은 시기, 포니와 포니 쿠페가 주지아로의 손에서 탄생했다.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한 포니 쿠페는 쐐기 모양 노즈와 원형 헤드램프, 종이를 접은 듯한 기하학적인 선 등의 디자인 요소로 관심을 모았다. “누구나 자동차를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엔지니어가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 한 그것은 단지 그림일 뿐”이라고 말한 주지아로의 디자인은 간결하고 명쾌했다. 크기와 장르를 가뿐히 가로지르는 그의 자동차 디자인이 시간이라는 허들을 성큼성큼 뛰어넘으며 호명되는 이유다.

  • 4 Humanity

    ‘우리 집 첫 자가용,’ 포니를 추억하는 사람 열이면 열 빼놓지 않는 문구다. 빛바랜 컬러 사진에 스며있는 포니의 추억들이 ‘가족 드라마’인 이유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슬그머니 아들의 손을 수동기어에 올리던 아버지와 그때 느꼈던 기어봉의 떨림을 기억하는 아들, 매일 아침 굽어진 골목길을 지나 출근하던 엄마의 능숙한 핸들링, 시동 꺼진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쥐고 라이트를 켜고 라디오 볼륨을 조작하던 누군가의 장난감.

    포니가 길 위에 새겨 놓은 추억의 온도는 유쾌하고 따뜻했다. 벚꽃이 만개한 경주 보문단지 길 위에서, 신혼여행 중인 제주도 중산간 국도에서, 아들 군 입대를 위해 찾은 논산 훈련소 앞에서, 명절 귀향길에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차공간이 따로 없던 집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에는 항상 포니가 있었다. 이는 바로 사람들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길 바랐던 정주영 선대 회장의 휴머니티 정신과 고스란히 포개지는 장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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